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samurai01.egloos.com

포토로그



멤피스 도착후 일주일

7월2일 밤 11시에 멤피스에 도착했으니 대략 8일정도가 지났다. 그간 나는 책 한권의 절반정도를 읽었으며 그외의 어떤 공부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지난 1년간 자신이 없었던 이 공간을 다시금 재구성하느라 분주한 한주를 보냈고 나는 만 나이로 6살 2살짜리 남자아이들과 거의 하루종일을 함께 하면서 누릴수 있는 행복과 함께, 이들을 돌보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첫째가 첫 등교를 하는 8월초가 살짝 기다려진다고나 할까. 

대략 시차적응을 마치고 오늘은 약 7시간 운전을 해서 플로리다 Pensacola라는 곳으로 간다. 한국의 경포대정도의 느낌일려나. 멤피스에서 비행기를 타지않고도 갈수 있는 몇 안되는 여름 휴가지인데 그간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다. 그곳에서 약 5-6일을 머물 예정이다. 그리고 돌아온 이후에는 계획대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8월31일까지 초고를 내기 위해서.

그렇게 보낸 멤피스의 첫 한주는 꽤나 즐거웠다. 조급함은 버리고 좀더 여류를 되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결코 소리를 지르는 아빠가 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13개월 반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휴면

페이스북 계정을 보니 작년 12월 초에 하나의 포스팅을 이후로 거의 휴면상태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을 아예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닌데 이젠 거의 눈팅수준. 그러다 보니 하루 접속횟수도 1번 혹은 그 이하로 줄었다. 난 퍼거슨 경의 "트인낭(트윗은 인생의 낭비)"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스마트폰 사용랑이 준것도 아니니 페이스북 활동량만 현저히 줄었다고 하는 게 맞다. 나름 이유를 생각해보면 대략 이렇다.

(1) 언젠가부터 페이스북에 자랑질을 하는 먹물들의 포스팅 형태에 적응을 못하게 되었다. 본인들은 "자랑질"이라 결코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나, 대체 어느 직종의 사람들이 뭐 하나 나오기만 할때마다 친절하게 "나 논문(책) 나왔소," "나 어디가서 발표하오," "나 취직 했소" "나 연구비 받았소" " 심지어는 "나 승진했소"를 자기 교수연구실 명패를 45도 각도로 줌업으로 찍어 올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 먹물들의 행태는 매우 분명해진다. (어떤 직장인이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했다고 명함을 줌엄 해서 찍어 올리는 경우는 한번도 듣도 보지도 못했다) 


(2) 그러다 보니 그간 페북을 통해 공짜로 먹었던 좋은 정보와 양질의 글들을 포기하더라도 차라리 페복이용을 줄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 같다. 물론 페북에 무슨 모두가 공유하는 코드가 있는것도 아니고 무슨글을 올리던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럼에도 나는 왜 소위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인정투쟁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혹자는 평생 한게 공부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일이 대개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기사 나 역시 인정투쟁이란 질환에서 완전히 벗어난건 아니니 타인을 평가질한 처지는 못되는데 그렇다고 그런 투쟁이 너무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온라인공간을 매일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스스로의 인정투쟁을 자극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3) 또 한가지 말못할 이유는 친척, 교회분들이 하나둘씩 친구가 되면서 이제 페북이 더 이상 private한 이야기를 하기 거북한 곳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친구신청을 거절할 수도 없고 오프라인에서 자주 보는 분들을 온라인에서까지 삶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왠지 적응이 되지 않으니 결국 페북자체를 줄이는게 나름의 해결책이 된 듯 하다. 

결론, 나는 이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개인공간에서 부정기적 일기를 계속 쓸 것 같다. 

미국

23킬로 짐 4개와 10킬로짜리 작은 가방 3개를 포함 총 7개의 수화물을 부치고 손에는 작은 가방들과 등에는 베낭, 그리고 유모차와 아이들 둘을 데리고 7월2일 월요일 저녁 멤피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첫 미국 입국 도시에서 이민국과 세관을 통과하고 다음 비행기를 타러 가는 그 1시간이 제일 힘들고 피곤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가족은 다음비행기가 출발하기 25분전에야 겨우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마지막 뉴왁(뉴욕)공항에서 멤피스로 향하는 2시간 30분짜리 짦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멤피스공항에서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교회형이자 절친 이웃분이 반갑에 우리를 맞아주셨고 황송하게도 그 분의 집에서 맛있는 저녁으로 허기를 채우고 집으로 오니 대략 밤 11시.

그렇게 약 2.5일이 지나고 7월5일 새벽이다. 역시 아이들이 시차적응을 빨리 한다는 말은 사실인듯. 두 녀석다 어제 12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곤하게 자는 걸 보니 하루이틀이면 시차적응도 대략 끝날 것이다. 

지난 11개월간 혼자만 살았던 이 큰집을 다시 4인가족체제로 바꾸는 일을 느리게 하고 있다. 냉장고도 음식으로 다시 채우고 아내는 아이들 옷장과 본인의 옷장, 식료품 보관창고등을 새로 정리하느라 바쁘다. 나 역시 미뤄왔던 집안 일들을 하나둘씩 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주 초반이 되면 몸과 집이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고, 큰 아들도 처음으로 미국 공립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6월29일 새벽 6시에 한국집을 나서서 계획한대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고 그 많은 짐을 끌고 멤피스에 도착한 것 자체가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약 한달을 이렇게 보내고 나는 13개월정도 남은 안식년을 의미있게 보낼 것이다.

아 그런데 7월초의 미국남부는 너무 덥다. 이제는 "기록적인" 날씨란 표현이 너무 진부한데, 뉴스에서는 Heat Wave란 표현을 써가며 미국 전역이 빨갛게 데워졌다며 호들갑니다. 그 바람에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야외활동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출국

허리통증은 여전하지만 예정대로 한국을 떴다. 가족들 모두와 함께. 앞으로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나 (이러고 또 내년여름에 들어오게 된다면 양치기 소년이 되겠지) 적어도 앞으로 1년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학교이메일도 더이상 오지 않고 그야말로 14개월의 안식년이 시작되었다. 계획한 일을 느리게 시작할 것이다. 일단 지난 1년간 이산가족으로 살다 미국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에 무한감사를 보낸다.

(이번에 처음으로 에어서울이란 아시아나 항공 자회사 LCC를 처음으로 타 봤다. 행운이던가. 12시 20분에 나리타에 도착한 우리비행기 보다 10분뒤에 나리타 공항에 착륙한 대한항공 비행기가 착륙중 바퀴가 뒤틀리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아마도 내 비행기의 출발이 10분만 늦었다면 나리타공항에서 몇시간을 비행기안에 갇혀 있었을 거다. 나리타 공항이 생각보다 바람이 거세 착륙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던게 사실인가보다.) 


허리통증

한국에 오기 일주일전 그러니까 6월8일에 허리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당시에는 거의 걷지도 못하고 가만 누워 있어도 아플정도여서 화장실에 거의 기어가는 다소 비참한 생활을 약 2일정도 했다. 1년에 한번정도는 꼭 왼쪽 허리가 삐끗하곤 했는데 난 이번에도 이러다 3-4일뒤면 다 나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약 18일이 지난 지금도 나는 허리통증과 싸우고 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일본으로 가족 모두와 이동을 하고 7월2일에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무시무시한 일정이 있는데 여전히 허리는 아프다. 그냥 걸어다는것 정도는 할 수 있으나 오래 서 있거나 하면 허리가 쑤시고 앉았다 일어날때마다 무지 신경을 써야 한다.

이 또한 지난 1년간 혼자 지내면서 운동을 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일텐데 그 고통은 생각보다 꽤 크다. 훈련병때는 이등병이 제일 부럽듯이 나는 지금 직립보행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그 바람에 지난 16일에 한국에 와서 암사동을 딱 2번 벗어났다. 교통카드 딱 5천원을 쓴게 전부... 빨리 낫고 싶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