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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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과 백종원

황교익은 아직도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 같고 백종원은 이제 지역구 아무데나 찍어도 다음 선거에서 국회의원은 떼논당상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골목식당>을 안보는 사람으로 그 방송이 끝난 다음날 아침 다음 첫번째 페이지에 또 어떤 자영업자가 백종원 말을 안듣고 혼나는 모습이 캡쳐되어 기사화되는 것을 본다. 페북에서 어떤 분 글에 비슷한 댓글을 달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방송은 백종원의 권위를 빌어 어리벙벙한 자영업자를 내보내 그를 혼내고 그걸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시점부터 <골목식당>은 노골적일 정도로 백종원의 솔루션을 징벌 서사로 구성한다. 미숙한 장사꾼이 성공하기 위해선 쓴소리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미숙한 장사꾼은 욕먹어도 싼 사람이라는 건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골목식당>이 징벌 서사인 건 후자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의 갈등 구조와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백종원은 지루한 설득 대신 자신의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골목식당>은 그러한 불가피함을 설명하기보다는 출연자들의 고집과 미숙함처럼 비호감인 부분을 강조하고, 누군가 혼나고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지워버린다. 백종원이 옳은 지적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약자가 강자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누군가를 미숙하고 좀 비호감이란 이유로 미워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병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의 비난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들을 혼내는 것이 백종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무리의 알파메일, 그리고 아버지의 법. 가부장적 권위는 강력한 가부장의 존재가 아닌 그의 관점을 다른 구성원들이 내면화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골목식당>의 시청자들은 자신들과 훨씬 가까울 일반인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혼나는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백종원의 입장에 서서 징벌 서사의 쾌감을 정당화한다. 가부장적 서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회귀한다. "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161619015&code=960100&sat_menu=A075&fbclid=IwAR2lbBaU_zjEVmYBK8OUCydyt5Ftyc0Qpxw3PfoIkX8r8chkBiYFr0mcaPE#csidxf6e78f9a4db7e2ab9e92aae3af8667d 

역사저널 그날 고종편

요즘 즐겨보는 방송 <역사저널 그날> 가끔 어디선가 한번쯤 뵌 적이 있는 연구자가 출연하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그런 방송

지난주에는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행보에 대한 패널들의 토론이 있었다. 학부 4학년때 뒤늦게 역사공부에 재미를 붙였을 때 잠시나마 나를 트라우마에 빠지게 한 주제. 한 수업에서 이태진의 <고종 시대의 재 조명>을 읽고 발제를 맡게 되었는데 후배였던 장xx여사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벙어리처럼 서 있었던 기억. 또 한편으로는 심기일전해서 고종에 대한 텍스트에 대해서는 잘 썼다는 평을 받았던 기억. 다 20여년전의 부질없이 기억의 한 순간이나 고종이 다루어진 방송이나 글을 그 기억때문에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번방송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뒷부분에 고종을 너무나 미화시키는 듯한 장면들은 이것이 공중파에서 다루는 역사에 대한 한계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참고로 난 이익주 교수의 고려시대 관련 글이나 팟캐스트 방송을 매우 좋아한다)



<민주주의를 만드는 사람들> 니콜라 기요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화"는 기계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본질에서 유래하고 국제 시스템에 완전히 통합된 열린 사회와 국가를 요구하는 자본의 새로운 필요성에 적응하는 과정이 된다. 세계화된 금융자본이 기업에서부터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거버넌스 유형을 재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이 주장이 제시하는 설명 방식에는 매우 강한 기능주의 경향이 있다. 즉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화가 자본의 현대적 구성에 포함되고 미국 국가기구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되는 계획을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과 그것의 전반적인 일관성이 이론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41페이지.

오래만에 보는 본격적인 연구서. 일본사상사와는 직접관련이 1도 없으나 최근 쓰고 있는 글과 연관지어 생각할 문제들이 풍부하게 기술되어 있다. 프랑스 학자가 쓴 냉전기 미국사회과학 사상/사회사 연구서.

미국에서 아시아 역사학으로 직장구하기

자극적인 글 하나 써본다. 

직장 구하는 것에서 멀어진 지 어언 몇년이 지난지라 올해 어느학교에서 누굴 뽑는다는 정보조차도 페북에서 들을 정도로 무심해졌건만 아시아 역사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게 될 때 뚜렷하게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십년전에 조교수 선발 공고를 냈던 학교가 한 4-5년전에 같은 직종으로 공고를 내더니 올해 또 공고를 낸다. 그러니까 이 학교는 한국의 호남지방의 ㅁ학교처럼 십년동안 동일전공으로 교수가 3번이 바뀌는 경험을 한 것이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일단 임용이 된 뒤 2-3년을 숨고르기를 하다가 더 "좋은"학교로 옮기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만 4년제 대학이 어림잡아 2000개가 넘으니 이런일은 어느분야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내 관찰로 볼때 유독 아시아학 관련 인문계 교수채용시장에서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럼 이렇게 금새 학교를 옮기는 이유는? 이것 역시 내 지극히 주관적 기준으로 볼 때 답은 간단하다. 자극적인 단어를 쓰자면, 처음에 간 학교가 당사자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 "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다다를때 까지 학교 옮기기를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타 전공의 경우 학교의 외적 수준과 관계없이 그곳에서 수십년을 일하고 은퇴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왜일까라고 그간 생각해 왔는데 관찰을 해 본 결과는 대략 이렇다.

1. 아시아 역사 (혹은 문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인원의 꽤 많은 비율은 유학생들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 유학생들은 대개 해당 국가에서 소위 상위권 대학에서 학부나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아시아 역사 혹은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미국대학역시 소위 세상적 기준으로 거의 100% 상위 30개 대학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최소 10년에서 15년동안을 각각의 나라의 최상위권 학교에서 지내고 연구한다.

2. 미국은 교수시장이 좋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반만 통한다. 그리고 어디든지 직장만 잡으면 그걸로 만족이다라는 아시아학 관련 신규 박사학위자들의 말 또한 절반 이하로만 진실이다. 학위를 받고 자기가 한번도 들어보지도 않았고 가보지도 않았던 곳에서 조교수가 되면 "인생은 실전"이 펼쳐진다. 일단 학생들은 이 아시아대학 출신 유학생 박사가 말하는 고매한 이론에 관심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한없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무려 대학 역사학 수업에서 4지선다 문제를 내는 굴욕도 참고 견뎌야 한다. 그걸로만 끝이 아니다. 학과에 혹은 학교 전체에 아시아에 관해 연구하거나 교육하는 사람은 자기 빼고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박사과정생 일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업계"의 주요 학자들이 방문하고 대학원생의 발표 등이 이어졌는데 그런 것도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는 가물에 콩나듯이 열린다. 그리고 그 가물에 콩나듯이 열리는 것도 자기가 직접 준비하고 해결해야 한다. 대학원생때는 그런 워크샵이 너무 많이 열려 귀찮기까지 했는데 내가 직접 기획할려니 1년에 한개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손 놓고 있으면 학교에서 아시아관련 행사라봐야 결국 학부생들이 주관하는 축제나 아시아 명절관련 모임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수도권은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연구공간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길어봐야 2시간만 가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학교나 연구소가 있고,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3. 도서관에 가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을 스스로 확인사살한다. 왜냐햐면 아시아학으로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지 않은 학교에서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 책을 보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출판을 위해 보강 연구를 하거나 새 연구를 할때 모든 자료는 상호대차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니까 x나게 부지런한게 살아야 한다는 뜻. 


4. 2-3번의 현실을 상쇄하는 요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해당 조교수가 그냥 맘을 편한하게 먹고 "여기 계속 있자"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금껏 적어놓은 것은 나의 뇌내 망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속된 말로 학교는 너무 떨어져도 사는 곳이 매력적이라면 계속 그 학교에 남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등. 그러나 이 마저도 현실이 녹녹치 않은게 그런 학교에서 주는 급료는 뉴욕이나 샌프란에서 살아남기가 버거울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 그러니 30대 혹은 40대 초반의 싱글이라면 씀씀이를 줄이고 대도시가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으나 몇년이 지나면 이마저도 어려워진다. 



5.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때 아시아학을 전공하게 되면 학교 바깥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수적으로도 유학생수가 더 많고 공부하는 내용도 적어도 내가 한발 걸치던 지역 아니던가. 이에 새 학교에 가게 되면 2-3번이 요인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랴, 이게 진정한 이방인이 겪어야 할 실전의 인생인데 말이다.


그러니 본인이 경험했던 자국의 상위권 대학과 북미 박사학위 수여 대학에서 느꼈던 연구/교육적 풍족함을 고스란히 느낄라면 결국 북미에서 30개 대학에서 자리를 잡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마저도 요즘 채용시장에서는 너무나 어렵다. 그러니 사람들은 일단 어디든지 가겠다고 하고 천천히 이동을 준비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이런 친구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다. 그런데 이건 거의 원형체험적인 것이라 그 누구도 쉽게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 3-4년마다 아시아학 전공 조교수를 새로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2010년도에 내가 1년을 비전임조교수로 보냈던 콜로라도의 모 대학도 딱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몇년 전에 겨우 선발한 조교수도 올해 학교를 떠났다는 소문이... 그럼 또 공고가 날 것이다.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2,3,4번의 연쇄는 계속될 것이다. 



멤피스 그리즐리스

지역에 있는 유일한 프로스포츠 팀. 돈없고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강팀을 혼내주는 컨셉의 팀이라 나의 적성에 딱 맞다. 게다가 대부분의 소위 전문가들이 하위권을 예상했는데 아직까지는 매우 잘해주고 있다.

요즘 2-3일 간격으로 농구보는 재미도 쏠쏠.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진 못해도... 오늘은 리그 최하위 팀과 경기니 무난히 이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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